2014년 4월15일 오후9시 세월호가 인천에서 제주도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원래 출발시각은 오후 6시30분이었지만 악천후로 출발이 늦춰졌습니다.
탑승자는 제주도 수학여행을 떠나는 경기도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 325명을 포함해 교사 14명, 일반 탑승객 73명, 화물기사 31명, 승무원 33명 등 모두 476명이었습니다.
4월16일 오전8시49분 전남 진도군 앞바다인 조류가 거센 맹골수도 부근에서 세월호는 급격하게 변침을 했고, 배는 곧 중심을 잃고 기울어져 표류하기 시작했습니다.
8시52분 단원고 학생이 119에 구조요청 신고를 했습니다.
배는 침몰하고 있었지만 선내에서는 “이동하지 말라”는 방송이 연방 흘러나왔고, 9시34분 해경 함정 123정이 도착했습니다.
기관부 선원 7명이 승객을 버리고 탈출해 구조됐고 조타실 선원들도 뒤따라 탈출했습니다. 침몰전까지 172명이 구조됐지만,
10시30분께 침몰한 이후 단 1명도 구조되지 못했고, 현재까지(2018년 11월) 희생자는 299명, 실종자는 5명입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대부분의 언론은 ‘전원구조’라는 오보를 냈고, 해경 등 구조당국은 구조를 제대로 하지않아 피해자를 비롯한 국민들의 불신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법원은 승객들을 버리고 탈출한 이준석 선장 등 세월호 선원 15명에 대해 살인, 살인미수, 업무상 과실 선박매몰, 선원법 위반 등의 혐의로 처벌하였으나 구조ㆍ구난 등의 책임자는 123정장 1명만 처벌하는데 그쳤습니다.
검찰의 수사, 감사원 감사, 세월호 특조위ㆍ세월호 선조위 등의 조사가 있었으나 여전히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미진한 상태고,
세월호 인양작업도 당초 2016년 7월까지 완료하려 했지만, 2017년 봄 4월11일에야 인양작업이 완료되었습니다.
세월호 침몰 원인과 정부대응의 실패이유 규명, 인양과정 적정성 및 책임자 처벌 등이 주요과제로 남아있어 여전히 해결해야 할 일입니다.